괭이갈매기 울 적에 - 로노웨와 겐지에 대한 고찰 (스포일러 주의)2022. 6. 22. 02:01
* 비디오 게임 원작, 코믹스 및 애니메이션으로 나온 용기사 07의 <괭이갈매기 울 적에>에 대한 아주 국소적인 리뷰.
* 저는 코믹스, 애니를 보았고... 결정적 스포일러 다량 함유되어 있습니다.
* 좋아하는 캐릭터에 관한 개인적 의견.
조부세대의 소년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보면 베아트리체와 만나기 전의 킨조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는 아마도 겐지였을 것이다. 겐지에게 킨조는 평생 가장 소중한 존재였고.
아니 젊은 킨조가 겐지한테 맨날 속아넘어가고 골탕먹어도 어쩐지 그를 미워할 수 없었다고 했는데.... 이건 겐지의 킨조를 향한 행동이 괴롭힘이 아니고 ‘사랑’이었기 때문임이 분명하다.
이미 손자 세대가 입증한 바 있지 않은가. 결국 마음이 통하고 가장 친한 친구가 된 두 사람은 자식 세대에서 크라우스가 나츠히에게 권하고 들켜서 볼 붉히던 그놈의 빈랑을 같이 씹으면서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장면까지 나온다. 이게 어떤 느낌의 사랑인지는 딱히 고민할 필요 없다. BL이라고 주장하는 게 아니고 우정이든 뭐가 됐든 순수하게 마법이 통하게 하는 그 고귀한 감정을 말하는 것이다. 킨조와 겐지 사이엔 분명 사랑이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 점이 괭이갈매기의 사건 전개에서 없으면 안 되는 사용인 ‘겐지’와 악마 ‘로노웨’를 만들게 된다.
로노우에 일가는 대만에서 죽었다.
로노우에 겐지도 그 때 같이 죽었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킨조가 자신을 위해 내민 구원의 손길을 거절할 수 없었다. 그는 단순히 살고 싶었던 것이 아니다. 자신이 떠나고 무법의 소요 속에서 가족들이 죽어갈 것임을 그는 알았다. 사실 그 또한 거기서 죽을 각오를 했을 것이다. 그러나 킨조와 재회한 순간, 그는 가족들보다도 자신이 사랑한 벗의 곁에 있는 것을 택하고 말았다.
허나 이제 킨조는, 외날개로 겐지를 감싸고 있으면서도 고개는 베아트리체만을 바라본다. 무연고자가 된 겐지에게 남은 건 그밖에 없는데, 그는 전처럼 둘도 없는 친구이자 마음을 의지할 곳이 되어주지 못하는 것이다. 겐지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이자 구원자는 킨조인데, 죽음을 바랄 정도로 망가졌던 킨조에게 삶을 돌려준 소중한 존재는 겐지 자신이 아니다. 겐지는 그 격차를 결코 메우지 못할 것임을 절감했다. 아마도 그는 그 즈음에 결심했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되지 못한다면 필요한 사람이 되기로. 감정 같은 건 죽이고 가구처럼, 킨조를 위해서 살기로.
그래서 그는 ‘겐지’로만 불리게 되었다.
우시로미야 가문의 사용인 겐지. 오직 킨조를 위해서만 살아가며 평생 목숨 빚을 갚는 존재. 자신의 마음이나 꿈이나 기분 따위는 더 이상 필요 없었다. 결혼도 하지 않고 그저 언제나 킨조가 부르면 달려갈 수 있는 곳에서 기다릴 뿐. 난조나 쿠마사와는 성으로 불리는데, 겐지는 줄곧 이름으로 불린다.
당연하다. ‘로노우에’는 죽었으니까. 스스로 죽인 그 인격은 그렇다면 어디로 갔을까. 재기 넘치고 당당한, 그 엘리트 양아치 로노우에 겐지는 어떻게 되었을까. 어른이 되어간 에바에게서 소녀시절의 이루지 못한 꿈인 에바트리체가 분리되어 나갔듯, 이런 패러다임 전환을 겪은 겐지에게서 떨어져 나간 젊은 시절의 그가 아마도 ‘로노웨’일 것이다.
딱 그와 킨조가 재회한 그 시점의 모습을 하고, 즐거우면 즐거운 대로 웃고, 망설임없이 상대를 속이고 골탕먹이는 영리한 ‘악마’.
그러면 로노웨는 왜 ‘악마’여야 했을까? 물론 표면적으론 이름하고 가구장이라는 역할이 솔로몬의 악마들 중 로노웨랑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쿠마사와는 실제로 베아트리체에게 마법을 가르친 존재고 가프는 그녀의 어리고 서투르던 시절과 연결되어 물건을 숨기거나 하는 아이덴티티가 있다. 에바트리체? 에바가 자신의 부단한 노력을 절대적인 마법으로 굳게 믿던 마음이 마녀로 형상화된 것이 시작. 겐지라는 무감정하고 충직한 남자의 어디가 마법과 연관되어 있단 말인가?
사실 답은 나와 있다. 그는 공범 중에서도 직접 손에 피를 묻히는 조력자다. 명령이라고는 해도, 겐지는 묵묵히 살인을 저지르고 아무런 티도 내지 않을 수 있는 인간이었던 것이다. 그것은 그가 젊은 시절, 지옥도로 변한 고향의 아비규환을 헤쳐나왔던 것과 연관되어 있을 것이다. 그 때 무슨 일들이 벌어졌을까? ‘로노웨’와 ‘겐지’의 공통된 이 기억에서? 킨조가 구하러 갔을 때 겐지는 이미 많이 다쳐 있는 모습으로 나온다. 독자도 킨조도 그 누구도 자세한 사정을 모르지만, 겐지가 사람이 죽는 것에 익숙해질 정도의, 그 자신도 스스로를 악마로 여길 정도의 험한 일들이 있었을 거라 예상할 수 있다. 어쩌면 겐지도 에바처럼, 젊은 자신이 귓가에서 타박하는 목소리를 들은 적이 있을지도 모른다. 똑똑하고 냉철하고 사뭇 시니컬하게, 남의 시선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길은 자신이 판단하던 빛나던 시절의 스스로가 지금 초라해지고 망가진 늙은 남자에게 얼마나 할 말이 많을까. 하지만 그들은 결국 같은 사람이고 서로의 유일한 이해자다. 그래서 작중에서 등장하는 그들은 이런 모습이다. 겐지는 로노웨에게 존중을 표하고, 로노웨는 지친 겐지를 편하게 잠들게 해 주는.
그렇다. 겐지는 지쳐있다. 그가 가구가 된 이래 감정을 가지고 독단적으로 한 일이 딱 하나, 3대 베아트리체를 살리고 몰래 키워낸 일인데.... 그게 또 잘 풀리지 않았다.
킨조는 아기가 죽은 줄 알고 더 미쳐가는데 그 꼴을 겐지는 옆에서 계속 보고 있어야 하고 말은 못 꺼내겠고 애는 따돌림당하면서 자라는 것 같고 어찌어찌하다가 사실 네가 베아트리체와 킨조의 딸래미자 손녀라는 사실을 밝히게 되었지만 그 진실을 밝히는 과정이 3대에게는 충격과 공포와 상처투성이 폭탄이었으니. 가구답지 않은 일을 해버린 탓에, 전 주인은 미쳐 죽고 새 주인은 괴로워하며 일가와 함께 자살하겠다고 한다. 자신이 잘못해서. 자신이 한 판단이 의도와 달리 처참한 결과를 빚어버려서. 일평생 스스로를 죽이고 충성스럽게 살아온 결과가 이거다. 정말 유복해죽겠는 말년이다.
그렇기 때문에 겐지는 3대 베아트리체에게 무조건 복종을 맹세한다. 아이에 대한 사랑도 있겠지만... 연민과 그보다 큰 죄책감으로 인하여.
작중에 나온 바 그는 이 모든 일에 대해 동요하지 않는다. 그저 황금향으로 어서 가서 안식을 취할 수 있기만을 바라고 있다. 말인즉, 얼른 죽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 남자는 3대 베아트리체의 계획에 스스로를 바치고 죽는 것으로 모든 속죄를 끝내고 편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딱히 끝맺을 말이 생각나지 않는다. 아무튼 고찰한 바는 이렇다. 그러니까 겐지의 분신 로노웨라는 건 평생 자식들을 위해 헌신한 가정주부 어머니의 사진첩 속 반전 넘치게 까리하고 꿈 많던 여대생 같은 그런 존재라는 것이다. 뭐랄까 가정에 종속된 존재가 되기 전 처녀 적 성 같은 것. 실제로 정말 비슷하다. 겐지는 편익의 독수리를 몸에 걸치는 것이 허락된 존재, 편익을 허락받은 고용인들 중 샤논카논은 사실 혈족이고, 겐지는… 시집 와서 우시로미야로 성 갈아치운 며느리들 같은 매커니즘인 것이다. 킨조가 마누라보다 훨씬 신뢰하고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낸 남자. 하지만 슬프게도 애인한테는 밀림. 킨조를 향한 짝사랑에 고통받으면서 가구로 살아온 세월이 1945년부터 1986년까지 무려 41년이다. 우스갯소리지만 이건 뭐 키리에도 한 수 접어 줘야 하지 않는지. 그야말로 3대 베아트리체의 절망에 가장 잘 공감하고 보좌해 줄 수 있는 인물이다. 과연 베아트의 가구장. 과연 오른팔! 스스로 행동지침을 정한 뒤 40년을 캐붕내지 않고 살아온 독기의 화신 그 자체! 물론 황금몽상곡은 그런 그조차 얄짤없이 개그행 쾌속열차 편도티켓 끊어다 보냈지만.... 이 자리를 빌려 이야기의 멋진 조연에게 조명과 갈채를 보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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